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길을 걷다 문득,
빨간 장미 한 송이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.
“나는 이 장미를 정말 빨갛다고 느끼고 있는 걸까?
혹시 내 눈에 보이는 이 색이,
다른 사람에겐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?”
우리는 모두 장미를 빨갛다고 말하지만,
정말 ‘같은 빨강’을 보고 있는 걸까?
뇌는 색을 ‘보는’ 것이 아니라, ‘만든다’
색은 과학적으로 말하면 빛의 파장이다.
빨간색은 약 620~750nm의 파장을 가지며,
이 빛이 눈의 망막에 도달하면,
우리는 그것을 ‘빨강’이라는 감각으로 인식한다.
하지만 이 감각은 눈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.
빛을 해석하는 건 뇌다.
눈은 정보를 전달할 뿐,
‘빨강’이라는 감정은 뇌가 만들어낸다.
그러니까, 당신이 보는 ‘빨강’은
나의 ‘보라’ 일 수도 있다.
당신의 뇌와 나의 뇌는 다르게 작동한다
사람마다 눈 속 원추세포의 구조나 분포,
그리고 시각 피질의 반응 방식은 미묘하게 다르다.
그 차이는 우리가 알지 못한 채 존재한다.
왜냐하면 모두가 그 색을
“빨강”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.
그래서 나는 빨간 장미를 보고,
당신은 보랏빛 장미를 보았을지도 모르는데도,
우리는 둘 다 “빨간 장미”라고 말한다.
말은 같지만, 감각은 다를 수 있다.
하지만 이 가설은,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
이 모든 생각은 결국 하나의 가설이다.
“사람은 모두 다르게 색을 지각하며,
그 차이는 언어로 덮여 있을 뿐이다.”
이 가설은 매력적이지만,
과학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.
우리는 서로의 뇌를 ‘감각의 관점’으로
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.
이런 종류의 명제를 철학에서는
검증 불가능한 가설(non-falsifiable statement)
이라고 부른다.
그러니 이건 결국,
논증할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다.
색약, 색맹이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?
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다.
왜냐하면 그것은 색을 ‘다르게 보는 것’이 아니라,
‘일부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’이기 때문이다.
예를 들어, 적록색약의 경우
빨강과 초록이 같은 색처럼 보이거나, 잘 구별되지 않는다.
이건 뇌의 해석 차이라기보다,
망막의 특정 수용기 기능 부족에서 비롯된
생물학적 한계에 가깝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례는
우리가 생각보다 더 다양하게 세상을 인식하고 있다는
하나의 단서가 되어준다.
즉, 색약은 이 가설을 완전히 뒷받침하진 못하지만,
“감각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”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
유의미한 예라 할 수 있다.
그래서, 이건 나의 색으로 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
이 글은 하나의 과학 이론도, 실험 보고서도 아니다.
그저 내가 살아가며 문득 떠올린,
작은 물음에서 시작된 사유의 조각이다.
하지만 그 물음 하나로,
나는 세상이 조금 더 신비롭게 느껴졌고,
다른 사람의 시선을 상상하는 일이
조금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.
당신은 지금, 어떤 색의 세상을 살고 있나요?